테이퍼링(tapering)은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는 통화 정책입니다. ‘점점 적어지는’ 이라는 뜻의 tapering이라는 말대로 축소하되 점진적으로 축소한다는 사실이 강조된 정책이리고 볼 수 있습니다.
테이퍼링이란?
예를 들어, 중앙은행이 매달 850억 달러에 상당하는 채권을 시장에서 매입해 왔으나 이번 달부터는 매입 규모를 100억 달러 줄여서 750달러에 상당하는 채권만 매입하는 것처럼 양적완화 규모를 줄이는 것입니다.
양적완화를 중지하는 것이 아니라 양적완화는 유지하되 그 규모를 줄이는 것입니다.
테이퍼링을 국채 매입 축소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이는 범위를 너무 줄인 정의입니다. 미국만 해도 양적완화를 실행할 때 장기 국채만 매입한 것이 아니라 주택저당채권(Mortgage Backed Securities:MBS)도 매입했으니까요. 유럽 중앙은행은 환매조건부 채권(RP)을 매입하는 방식으로 양적완화를 진행되었기 때문에 이 경우에는 환매조건부 채권 매입 축소라고 특정해야 하니까 그냥 양적완화 규모 축소라고 하는 것이 좋습니다.
역사적으로 볼 때 2008년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3번의 대규모 양적완화가 있었고, 2013년 12월에서 2014년 10월까지 총 7번의 테이퍼링이 있었습니다. 이로써 2008년 금융 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양적완화는 종료되었습니다.
그런데 2013~2014년의 경험을 참고해서 2022년부터 테이퍼링을 시작할 것이란 기사가 있었습니다. 이는 2008년 금융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양적완화는 끝났지만, 2019년 9월의 양적완화(연준은 이를 양적완화라고 인정하지 않습니다만.)와 코로나 19 확산에 따른 경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2020년 3월 양적완화에 대한 테이퍼링 스케줄을 제시한 것입니다.
2013년 ~ 2014년 테이퍼링 진행 과정
벤 버냉키 연준 의장이 테이퍼링을 처음 언급한 시점은 2013년 5월 22일 입니다. 이후 7월에 있었던 기자 회견에서 경제 지표가 보여 주는 긍정적 신호에 따라 2013년 말부터 2014년까지 실시할 것이라고 밝힙니다.
실제로 2013년 12월 당시 850억 달러 규모의 양적완화를 750억 달로 규모로 줄임으로써 100억 달러의 테이퍼링을 시작했죠. 2014년 1월, 3월, 4월, 6월, 7월, 5차레에 걸쳐 100억 달러씩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 한 후 10월에는 남은 150억 달러의 양적완화를 중지함으로써 테이퍼링을 종료했습니다.
2013년 ~ 2014년 테이퍼링에 대한 시장 반응
2013년 5월 벤 버냉키의 발언 이후 채권 가격은 급등했고, 주식 시장은 큰 변동성을 보였지만, 2013년 하반기 이후 안정되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그러나 테이퍼링에 대한 언급이 있었던 시점 이후의 미국 채권 가격 급등은 심각한 수준이었습니다. 1994년 ~ 1995년 1년 동안 7차례에 걸쳐 총 3% 미국 기준 금리를 올림으로 인해 초래된 채권 가격 급락(채권 금리 급등, 이를 ‘채권 대학살’이라고 함)과 같은 수준일 것으로 우려 하는 기사(The ‘Great Bond Massacre’ of 2013)까지 나올 정도 였습니다.
참고: 채권 가격과 이자율 관계
재밌는 것은 당시 미국 연준은 테이퍼링을 바로 실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시장은 마치 위기가 임박한 것처럼 반응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지나고 나서 보니 당시 스케줄 발표부터 실제 실행까지의 과정은 미국 경제의 회복을 반영한 적절한 조치였음이 증명되었지만, 당시 시장 반응은 분명 지나친 측면이 있습니다.
2014년 본격적으로 테이퍼링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주식 및 채권 시장은 안정적이었습니다. 이는 2008년의 금융 위기를 극복하고 미국 경제가 회복되면서 적절한 시기에 적절한 조치가 취해졌음을 의미하는 것일 겁니다.
2013년말 ~ 2014년의 양적완화 축소 과정은 사실 미국보다는 신흥국에 미친 영향이 더 컸습니다.
2014년 초 터키, 아르헨티나, 브라질, 칠레, 멕시코, 러시아 등에서 달러 유출로 인해 신흥국 화폐 가치가 하락했고, 추가적인 외국 자금 유출을 막기 위해 금리 인상이 불가피했었습니다.
당시 신흥국의 위기가 확산되어 또 한번의 외환 위기가 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었지만, 1990년대 후반과 같은 외환이기는 없었습니다. 당시 우리나라는 무역 흑자 기조를 이어가고 있었고 외환보유고도 충분하여 다른 신흥국과 달리 큰 총격을 받지는 않았습니다.
양적 긴축과 테이퍼링의 차이
테이퍼링과 비슷한 통화정책으로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이란 통화 정책이 있습니다. 비슷하지만 다릅니다. 테이퍼링은 양적완화 규모를 축소하는 것이고 양적 긴축은 양적 완화로 인해 증가된 중앙은행의 자산을 축소하는 것입니다.
테이퍼링이 진행 되는 중에도 양적 완화는 진행됩니다. 규모가 축소될 뿐.
양적 긴축이 필요한 이유는 양적 완화를 위해 매입한 채권은 만기가 되면 대부분의 경우 다른 채권과 교체되는데, 이 경우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자산은 계속해서 증가 되기 때문입니다.
아래 그래프는 2008년 ~ 2020년까지의 미국 기준금리(파란 색)와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자산 규모(빨간 색)를 보여 주는데요, 2017년에서 2019년 초까지의 양적 긴축 기간을 제외하고는 대차대조표 자산이 증가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금융 위기 전 미국 중앙은행의 대차대조표 자산은 9250억 달러 이었지만 2017년에는 4조 5천억 달러까지 증가합니다. 이렇게 증가된 자산(특히 양적완화로 증가된 채권 자산)은 두 측면에서 경제에 부담으로 작용합니다.
첫째는 시장 이자율이 상승하는 경우 채권 가격이 하락할 것이므로 중앙은행은 국채 매각 손실을 안게 된다는 부담이고, 둘째는 부풀려 진 자산이 인플레이션 기대 심리를 높이는 방향으로 작용한다는 부담입니다.
이러한 부담을 줄이기 위한 정책이 바로 양적 긴축입니다. 매입한 채권의 만기가 도래할 때 이를 연장하거나 다른 채권을 매입하는 대신 만기 상환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만기 상환을 통해 시중에 풀리는 통화를 줄임과 동시에 중앙은행 대차대조표 상의 자산을 줄이게 됩니다.
이처럼 양적 긴축은 양적완화로 늘어난 중앙은행 자산을 줄기는 것이고 테이퍼링은 양적완화 규모를 줄인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테이퍼링과 금리
양적완화와 테이퍼링의 핵심은 금리입니다. 전자는 금리를 내려 경제에 생기를 불어 넣기 위한 정책이고 후자는 비정상적으로 낮아진 금리를 정상화 하는 정책입니다. 전자는 즉각적이고 과감하게 이루어져야 성과를 얻을 수 있는 반면, 후자는 적절한 시기에 점진적으로 이루어져야 성과를 낼 수 있습니다.
테이퍼링을 시작하는 타이밍이 늦으면 경기 과열로 인한 인플레이션이 생길 수 있고, 타이밍이 빠르면 살아 나려는 경제에 찬물을 끼얹는 꼴이 되기 때문에 타이밍이 중요합니다. 너무 빨리 진행하면 주식 시장 변동성 증가와 급격한 금리 상승 등의 부작용이 생기기 때문에 점진적으로 진행되어야 합니다.
점진적인 양적와화 규모 축소를 통해 양적완화를 실질적으로 종료하고 나면, 연준은 기준 금리를 인상하는 수순을 밟습니다. 테이퍼링과 기준 금리 인상을 동시에 진행하기 보다는 양적와환 축소로 기반을 다지는 작업을 한 후에 금리를 인상하는 것이 보통입니다.
미국 연준이 언제 기준 금리를 인상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2023년 이후일 것으로 예상되고 있습니다. 물론 이보다 더 빠를 수도 있고 더 늦을 수도 있습니다. 시기는 경제가 얼마나 잘 회복되는가에 달려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