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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속세 인하 주장이 놓치고 있는 것

재계에서 몇 손가락 안에 꼽히는 회장님께서 돌아가시면 그 분의 업적을 기리는 일 말고도 거의 항상 언급 되는 이야기가 있다. 곧 상속세를 손 보아야 한다는 이야기다.

상속세가 높아서 가업 승계를 포기하는 기업가도 있다, 상속세를 아예 폐지하는 나라도 있는데, 왜 우리만 높은 상속세율을 고집하는가? 상속세를 낮추어야 한다.

이런 이야기들은 전(前) LG 그룹 구광모 회장이 돌아가셨을 때도 등장했고,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별세 때도 등장했다. 삼성 그룹 이건희 회장의 죽음에도 애도의 물길이 채 끝나기도 전에 상속세 인하론은 예외없이 등장했다.

그런데 재산을 상속 받는 사람 중에 이러 저러한 공제를 다 뺀 후에 실제로 상속세를 내는 사람은 상속 받는 사람 중 2.2% 이다. 2019년에 물려 받은 재산이 500억이 넘는 사람은 15명 이었다.1

이렇게 몇 안되는 재벌 또는 재벌 급 자손의 상속세를 대체 왜 우리가 걱정해야 하는지 의문이 들지만, ‘우리’ 모두는 아닐지 몰라도 적어도 일부 기자 또 일부 국회의원은 재벌 가(家)의 상속세가 너무 많아 걱정인 것은 분명해 보인다.

물론 대다수에게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문제라 할 지라도 일부 몇 사람에게 부당한 처사가 이루어 진다면 ‘우리’는 공분함이 마땅하다. 과연 상속세는 우리 모두의 공분을 이끌어 낼 정도로 높은 것인가?

한국의 상속세율은 높은가?

2017년 OECD 국가 중 한국의 상속세 최고 세율은 50%로 일본(55%) 다음이다. 프랑스는 45%, 영국은 40%, 가장 잘 산다는 미국은 40%이며, 캐나다처럼 상속세가 아예 없는 나라도 있으니, 상속세 자체만 놓고 보면 한국의 상속세 율이 높은 것은 사실이다.

높은 것은 사실인데, 고려해야 할 요소가 두 가지가 있다. 이 두 가지를 고려한 후에 과연 한국의 상속세 율이 높은 가를 판단해 보시기 바란다.

첫째, 방금 전 비교한 세율은 명목 상의 세율이고 실효 세율은 따로 있다.

상속세는 ‘상속재산x상속세율’로 결정날 것 같지만, 이렇게 상속세를 결정하는 것은 너무 야박하다. 자식의 권리라는 것도 있으니까. 그래서 상속재산에서 이러 저러한 항목을 공제 해 준다.

나라마다 공제해 주는 내용과 크기가 다를 것인데, 여기서 이를 일일이 따져서 비교하기는 힘들 것 같다. 다만, 한국의 상속세 실효 세율2이 그렇게 높은 것만은 아니라는 점만 언급하고 넘어가기로 한다.

상속세 실효세율이 높은 것은 아니라는 주장이 아주 설득력있게 들리지는 않을 것이란 점은 인정하자. 명목 세율이 높은 것은 분명한 사실인데, 굳이 실효 세율이란 단어를 끄집어 내는 것은 왠지 궁색해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나라 실효 세율은 쉽게 계산할 수 있지만, 다른 나라 실효 세율을 계산하는 것은 복잡하기다. 해서 상속세 실효세율을 다른 나라와 비교하는 건 쉽지 않다는 현실적 어려움도 있다.

둘째, 상속세율은 다른 세목 세율과의 연관성 속에서 보아야 한다.

이게 무슨 말이냐 하면, 한국의 상속세율이 높다는 것은 다른 나라와 비교해서 그렇다는 것인데, 다른 세목 세율은 어떻냐 하는 것이다.

예컨대 미국이나 프랑스의 상속세율이 낮기 때문에 우리도 내려야 한다는 결론을 내리려면, 과연 미국이나 프랑스의 세수(稅受) 구조는 어떤가도 따져 보아야 한다는 말이다.

아래 표를 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나라보다 상속세율이 낮은 프랑스, 영국, 독일, 미국은 GDP 대비 소득세 비중이 한국 보다 높다. 상속세가 없다는 캐나다의 경우 OECD 최고다.

즉, 우리나라보다 상속세율이 낮은 나라는 소득세를 통해 우리보다 더 많은 세금을 걷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상속세율을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려면 다른 세목의 세율은 어떻게 할 것인가를 함께 논의해야 한다.

GDP 대비 소득세 비중(단위 %)

국가20112012201320142015201620172018
캐나다11.111.411.311.412.111.911.712.0
이탈리아11.011.611.611.211.210.910.810.8
미국9.39.29.910.110.610.410.49.9
독일8.89.49.69.69.89.910.210.4
영국9.38.98.98.78.99.09.19.1
프랑스7.48.08.48.58.58.68.69.5
일본5.15.25.55.75.85.75.96.0
한국3.53.73.74.04.34.64.85.2
OECD평균7.77.98.08.28.38.28.38.3
자료: OECD Tax Database(2020.7.31. 기준), 국회예산정책처 발간 2020 조세수첩에서 인용.

상속세·증여세 회피 의혹

상속세 율이 다른 나라에 비해 높고 낮음을 따지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지만, 정책의 변화를 기하려면 다른 세목 세율과의 연관성 속에서 전체적인 비교를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라는 점을 방금 전 알아 보았다.

우리나라 재벌은 상속세·증여세를 성실하게 납부하고 있는가도 따져볼 일인데, 우리는 몇 가지 사례를 기억하고 있다.

2008년 상섬 특검을 떠올려 보자. 당시 특검은 이건희 회장의 차명계좌 1,021개를 발견했고, 총 금액은 4조 5천억 원에 이른다는 것을 알아냈다. 삼성 측에서는 해당 금액은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상속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상속 재산이라면 상속세를 내야 하지만, 상속세 시효 10년이 지났기 때문에 이건희 회장은 상속세를 한 푼도 내지 않았다. 선대로부터 물려 받은 현금과 유가증권을 굳이 차명계좌에 넣은 것은 상속세를 회피하기 위한 것이 아닌지 의심스럽다.

이재용 회장에게는 경영권 승계 과정에서 증여세를 회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혹이 있다.

이재용 회장의 경영권 승계 과정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 헐 값에 발행된 전화사채를 사들여 1996년에 삼성 에버랜드 최대 주주가 됨,
  • 삼성 에버랜드란 이름을 제일모직으로 바꿈,
  • 삼성물산과 합병할 때 제일모직에게 유리한 방식으로 합병하여 경영권 승계를 마무리 함.

이 과정에서 이재용 회장이 낸 증여세는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사들일 수 있는 자금에 해당하는 61억원에 대한 것 뿐이었다. 제일모직을 상장하면서 생긴 평가차익, 삼성물산과의 합병으로 생긴 이익은 경영권 승계 과정이라는 사실상 증여 과정에서 생긴 이익이지만, 이에 대한 세금이 부과됐다는 소식을 들은 기억은 없다.

결론

우리나라 상속세 최고 세율이 OECD 국가 중에서 높은 것은 사실이다. 해서 상속세 율을 낮춰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이는 다른 세목 세율과의 연관성을 고려하지 못한 섣부른 판단이다.

앞에서 우리나라보다 상속세 최고 세율이 낮은 나라들은 대부분 우리보다 소득세 수입 비중이 높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한 우리나라 재벌은 상속세나 증여세를 회피한 것으로 의심되는 정황들을 가지고 있다. 현대 글로비스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로 정의선 부회장의 증여세 혜택도 그 중의 하나다. 상속세 또는 증여세 회피에 관해 검색을 하면 많은 사례를 만나게 되는데, 아직은 상속세나 증여세 인하를 이야기 할 때가 아니라는 의미 아닐까?

Footnotes:

1 2020년 국세 통계 1차 조기 공개 자료.

2 상속재산에서 공제 금액을 빼는 것을 고려한 세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