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날의 유래는 ‘설’이 새해 첫날이라는 사실과 관련이 있을 겁니다. 날짜로서의 ‘설’은 음력 1월 1일이니 음력을 기준으로 생활하던 조상에게 새해 첫날입니다.
서양이야 새해 결심을 세우는 정도 외에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지만, 우리나라는 단순히 새해 결심을 하는 날이 아니라 조상께 차례 지내고, 윗 어른께 세배하고, 따로 설날 음식을 챙겨 먹는 고유한 풍속으로써 중요한 명절의 의미를 부여하고 있지요.
설날의 유래는 역사가 오래된만큼 옛 기록을 찾아보아야 할 것입니다.
설날의 유래: 문헌에서 찾아보기
설날 세시 풍속과 관련해서라면, 19세기 출간된 (최종 완성본은 1849년인 것으로 추청) 홍석모의 「동국세시기」를 살펴보는 것이 그 출발점이 되겠지요. ‘설’은 조선의 4대 명절* 중의 하나였으니 당연히 「동국세시기」에 그 기록이 나옵니다. 당시 한양의 설날 풍속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아래 따옴표로 묶은 기록은 ‘홍석모 저, 장유승 역해, 아카넷에서 출판한 「동국세시기」’에서 인용했습니다.)
*조선의 4대 명절: 설날, 한식, 단오, 추석
동국세시기 설날 기록
“서울 풍속에 설날 가묘(家廟)에 인사드리고 제사지내는 것을 차례(茶禮)라고 한다. 남녀 아이들은 모두 새 옷을 입는데 세장(歲粧: 설빔)이라고 한다. 친척 어른들을 찾아뵙는 것을 세배(歲拜)라고 한다. 제철 음식을 대접하는 것을 세찬(歲饌)이라 하고, 술을 세주(歲酒)라고 한다.”
새해 첫날 입는 새 옷을 ‘설빔’이라고 하는데, 이 풍속은 지금은 잊혀져 가고 있다는 감이 있습니다. 아마도 ‘세뱃돈’을 받을 수 있으니 아이들이 ‘설빔’해 달라고 조를 이유가 없어서 이겠지요. 「동국세시기」에 기록된 설 풍속에는 지금 있는 세뱃돈이 없고 지금은 그리 중요하게 여기지 않는 ‘설빔’이 들어가 있지만, 이 점만 빼고 보면 지금과 거의 유사합니다.
이처럼 동국세시기를 통해 19세기 초·충반의 설날 풍속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설날의 유래에 대해서는 「동국세시기」가 말해 주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설날의 시초는 언제일까?
지금과 같은 설날 풍속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추측은 가능합니다. 그 시초가 고려시대임은 확실하고 어쩌면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추측할 수 있습니다.
「고려 시대의 일상 문화」 중 ‘고려 시대 여성의 여가 생활과 명절 풍속’ 섹션을 보면 다음과 같이 서술되어 있어 지금과 같은 설 풍속의 원형은 고려 시대에도 존재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설은 전후 7일을 쉬는 고려의 큰 명절이었다. 이 날 주부는 가족들의 설빔을 준비하고 차례 준비를 했다. 또 세찬과 세주를 마련하고 손님 접대로 바빴다.
설날의 유래까지는 아니어도 설 풍속과 관련이 있어 보이는 기록은 삼국사기와 중국 정사(正史)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삼국사기 신라본기에 ‘(진덕왕) 5년* 봄 정월에 왕이 조원전(朝元殿)에 직접 행차하여 백관(百官)으로부터 신년 인사를 받았다. 하정**의 예(禮)는 이로부터 시작되었다.’ 라고 기록되어 있고,
*651년
**하정(賀正): 신하가 군주에게 새해 인사를 드림.
중국 당나라 정사(正史)인 「구당서」 권199 「열전」149에는 ‘신라는 원일*을 중하게 여겨서 서로 경하하고 연회를 베푼다. 해마다 이날에 일월신에게 절을 한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원일(元日): 음력 1월 1일(정월 초하루).
이처럼 신라 권력층에서는 정월 초하루를 중하게 여기고 왕에게 인사하는 예를 행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지금까지 설날의 유래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 언제 어느 때에 어떤 이유로 지내게 되었는지 하는 설날의 유래에 대한 확실한 기록은 없지만, 새해 첫날에 인사를 하고 제사를 지내는 예(禮)로는 신라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간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고려 시대에는 9대 명절 중의 하나로 자리 잡았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