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무원이 승객에게 요구하는 것들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가 비행기 이·착륙할 때 창문 가리개(window shades)를 올리라고 하는 것이죠.
아무래도 이륙할 때보다는 착륙할 때 창문 가리개를 올려달라고 요구하는 경우가 많지요. 이륙할 때는 대부분의 경우 창문 가리개가 올려져 있는 상태로 있고, 착륙할 때는 들어오는 햇빛을 가리기 위해서 가리개를 내려 놓은 경우가 많으니까요.
비행기 이륙할 때·착륙할 때 승무원은 왜 창문 가리개를 올리라고 요구하는 걸까요?
이유는 한마디로 표현하면 비상 상황 발생시 최대한 빨리 탈출 하기 위해서입니다. 보잉사 통계에 따르면 치명적 비행기 사고의 13%가 이륙할 때, 48%가 착륙할 때 일어난다고 합니다.
이·착륙시 특히 착륙할 때 사고 발생 가능성이 높다는 것은 굳이 통계를 들이밀지 않아도 알 수 있습니다. 비행 중 이상이 발생하더라도 결국은 착륙을 시도해야 하니 아무래도 착륙할 때 사고율이 높을 수밖에 없어 보이네요.
그런데 사고 가능성이 높다는 것과 창문 가리개를 올리는 것은 무슨 관계가 있을까요?
창문 가리개를 올려야 하는 이유
1. 바깥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탈출은 비행기 바깥으로 하는 것인데 바깥 상황을 모르고 무작정 탈출하면 또 다른 위험 구덩이로 빠져들 수도 있겠지요. 창문을 통해 주변 상황을 보고 비행기의 오른쪽 비상문을 열어 탈출할 것인지 왼쪽 비상문을 열어 탈출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 창문 가리개를 올려 놓을 필요가 있습니다.
2. 시력 적응을 위해서
어두운 곳에 있다가 갑자기 밝은 곳으로 나가거나 반대로 밝은 곳에서 갑자기 어두운 곳으로 나가면 사물이 잘 보이지 않습니다.
비행기가 이륙할 때나 착륙할 때 혹시라도 있을 수 있는 비상 상황에서 빨리 시야를 확보하기 위해 비행기 실내등을 끄거나 켜서 바깥 상황에 맞춥니다. 창문 가리개는 물론 올려져 있어야 되겠지요.
3. 바깥 구조 요원이 비행기 안 상황을 파악하기 위해서
구조 요원이 대기하고 있는 상황이라면 구조 요원이 비행기 안의 상황은 어떤지를 살펴 볼 수 있다면 구조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공항에 비상 착륙을 하는 경우가 아니라면 구조 요원이 대기하고 있는 경우는 거의 없겠지만 혹시라도 바깥에 누군가 있다면 비행기 안의 상황은 어떤지 눈으로 확인할 수 있다면 좋을 것이니다. 바깥에 있는 구조요원을 위해서도 비행기 창문 가리개는 올려져 있는 것이 좋습니다.
90초 규칙
앞에서 본 3가지 이유를 통해 사고 발생 위험이 높은 이·착륙시 창문 가리개가 올려져 있는 것이 탈출에 조금이라도 유리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는데요, 한 가지 의문점이 남습니다.
상황이 발생했을 때 올려도 되지 않나 하는 의문입니다. 창문 가리개 올리는 데 몇 초나 걸린다고 말입니다. 그러나 이렇게 볼 일은 아닌 것 같습니다.
사고가 나면 패닉에 빠져 평상시에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는 행동도 잘 하지 못합니다. 그러니 미리 올려 놓아서 나쁠 것 없습니다. 이외에도 미리 올려 놓아야 하는 이유가 있는데요, 바로 90초 규칙입니다.
44인승 이상 비행기는 사고 발생시 승무원을 포함한 모든 승객이 90초 이내에 탈출 할 수 있도록 설계되어야 합니다. 항공사들을 90초 이내에 탈출할 수 있도록 모의 훈련을 하곤 합니다.
90초 규칙이 실제로 사고가 일어났을 때 무조건 90초 이내에 탈출 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상황에 따라 90초 보다 빨리 탈출할 수도 있을 것이고 그보다 더 많은 시간이 걸릴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건 촌각을 다투는 상황이니 가능하면 빨리 안전하게 탈출 할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 비행기 이·착륙시 창문 가리개를 올려 놓고 같은 맥락으로 등받이를 바로 하고 테이블을 제자리로 돌려 놓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