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침체를 의미하는 스태그네이션(Stagnation)에서 ‘스태그’, 전반적인 물가 상승을 의미하는 인플레이션(Intflation)에서 ‘플레이션’을 따서 만든 단어가 스태그플레이션(Stagflation)입니다.
단어 자체가 스태그플레이션의 뜻을 알려줍니다. 즉, 경기 침체와 인플레이션이 동시에 나타나는 현상이 스태그플레이션입니다. 존재하는 모든 것은 원인이 있기 마련이니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부터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에 대해 알아 볼텐데요, 미리 말씀드릴 것은 스태그플레이션 원인은 지금도 논란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아직 잘 모른다라고 정리해야 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시점에서 논의되고 있는 내용이 무엇인지 정도는 알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 내용을 이해하면 이론적으로 완결된 것은 아니지만, 어떤 상황일 때 스태그플레이션이 오는 지에 대해서는 힌트를 얻을 수 있을 것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원인 설 2가지
역사적으로 스태그플레이션을 확인할 수 있는 시기는 1970년대에서 1980년대 초까지의 시기입니다. 미국과 영국을 중심으로 한 선진국에서 일어났죠.
아래 이미지는 1960년에서 2020년까지 미국의 소비자물가지수 인상률과 실업률을 함께 나타낸 그래프입니다. 대략 1973년에서 1980년대 초까지 높은 물가인상률과 실업률이 함께 나타나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 시기의 스태그플레이션 원인으로 지목되는 사실은 두 가지인데요, 이 2가지 내용과 스태그플레이션 원인으로서의 한계를 같이 알아 보겠습니다.
1. 유가 상승으로 인한 공급 충격
위 그래프를 보면 대략 1973년과 1979년 시점에 물가가 치솟는 것을 볼 수 있는데요, 이 시기에 역사적으로 중요한 사건이 있었죠.
바로 석유수출국기구(OPEC)의 석유 수출 제한으로 유가가 치솟은 사건입니다. 이를 오일 쇼크라고도 하고 석유 위기라고도 하죠. 이러한 석유 공급 가격의 급등으로 인한 공급 충격을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이라고 지목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여기서 공급 충격(supply shock)은 석유와 같은 원자재 가격의 급격한 상승을 말하는데요, 원자재 가격 상승은 기업 입장에서는 비용 증가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공급 충격을 스태그플레이션을 원인으로 보는 것은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cost push Inflation)을 그 원인으로 지목하는 입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석유 위기와 같은 공급 충격은 1970년대와 1980년대 초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원자재 가격 상승은 때때로 일어나는 현상입니다.
공급 충격을 스태그플레이션을 원인으로 보는 입장은 대체 어느 정도의 비용 상승이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연결되는지 또한 1970년대와 1980년대 초를 제외한 시기의 비용 상승은 왜 스태그플레이션으로 연결되지 않았는지에 대해 설명하지 못합니다.
2. 확장적 통화정책에 책임이 있다
스태그플레이션 원인으로 확장적 통화정책을 꼽는 입장은 1970년대 이후 경제학의 주류로 등장한 통화주의의 입장입니다.
통화주의 입장은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일 뿐이다.’ 라는 명제로 대변되는데요, 확장적 통화 정책은 실물 경제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하고 물가만 올리게 되므로 실물 경제에 일정 수준의 통화량이 유지되는 수준으로 통화 정책을 펴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약간의 배경 설명이 필요한데요, 미국의 대공황이 끝나는 2차 세계대전 이후 1960년대까지 경제학계는 케인즈 경제학이 주류였습니다.
케인즈 경제학의 경기 침체에 대한 처방은 단순 명쾌하게 확장적 통화 정책입니다. 확장적 재정 정책은 경제가 돈은 돌지만 누구도 투자하려 하지 않는 유동성 함정(liquidity trap)에 빠졌을 때에 써야 하는 것이니, 경기가 안 좋을 때 1차적인 처방은 확장적 통화 정책입니다.
통화주의자는 케인즈의 확장적 통화 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을 불러 왔다고 보는데요, 이렇게 보는데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정책 시차 때문에 확장적 통화 팽창은 경제를 더 어렵게 만든다
정책 시차란 정부의 정책이 실제로 실현되기까지 걸리는 시간입니다. 얼마의 시차가 벌어지는지 일률적으로 말할 수는 없지만 정부가 어떤 정책을 실시하더라도 그 정책이 바로 실현되지 않는다는 것은 충분히 상상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정부가 경기 침체를 해결하기 위해 확장적 통화 정책을 쓰더라도 실제로 이 정책이 실현되는 것은 얼마간의 시간이 지나서 입니다.
정책 시차가 있다는 것 자체는 문제될 것이 없지만, 문제는 정책을 세울 때의 경제 상황과 정책이 실현될 때의 경제 상황이 다를 때입니다. 예컨대 확장적 통화정책을 세울 때는 경기 후퇴 시기였지만 이 정책이 실현될 때 즉 실제로 통화가 증가 하는 시기 또는 경기가 회복될 때라면 이 정책은 물가 인상을 가중 시키는 결과를 낳게됩니다.
기업과 가계의 기대 인플레이션에 따른 단기 필립스 곡선의 상승이 스태그플레이션 원인
정책 시차가 오르려던 또는 오르고 있던 물가를 더욱 올리는 현상은 설명할 수 있지만 이것을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삼기에는 좀 약합니다. 높은 물가가 나타나는 현상에 대해서는 설망할 수 있지만, 실업률도 높은 현상을 설명하지는 못하니까요.
실업률마저 높은 현상을 설명하기 위해서 통화주의자가 주장하는 것은 기업과 가계의 인플레이션 기대입니다. 인플레이션이 지속 되는 경제에서 가계와 기업은 앞으로도 인플레이션이 있을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 인플레이션이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면 노동력을 공급하는 가계는 임금 인상을 요구하고 기업은 임금 인상을 반영하여 판매 가격을 올릴 것입니다.
만약 실업률이 높은 시기에 이런 일(가계와 기업의 인플레이션 기대로 인한 물가 상승)이 일어나면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와 같은 스태그플레이션 원인에 대한 설명은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의 상충 관계를 나타내는 필립스 곡선이 기대 인플레이션의 영향을 받아 상향으로 이동하는 것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위 이미지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에 영향을 받아 단기 필립스 곡선이 상향 이동하면 실업률과 인플레이션 조합은 A점에서 B점으로 이동합니다. A점에서 B점으로의 이동은 실업률 변화 없이 인플레이션율만 오른 것입니다. 이때 실업률이 이미 높은 수준이라면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통화주의에 따르면 기대 인플레이션 상승이 스태그플레이션의 범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기대 인플레이션이 오르는 이유는 확장적 통화 정책 때문이므로 정확하게는 확장적 통화정책이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이 됩니다.
통화주의는 비용 상승에 의한 인플레이션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인플레이션은 화폐적 현상일 뿐이라고 보는 것이 통화주의의 기본 입장이니까요. 그러나 공급 충격에 따른 급격한 비용 증가가 스태그플레이션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할 수는 없겠으나, 간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았을까요?
적어도 스태그플레이션 현상이 있었던 1970년대와 1980년 초에 석유 위기로 인한 충격이 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기는 힘듭니다.
또한 2008년 미국 발 금융 위기 이후 양적 완화로 불리는 급격한 통화 팽창 정책을 썼지만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지 않았다는 점을 기억한다면, 확장적 통화정책을 스태그플레이션 원인이라 하기에는 뭔가 문제가 있어 보입니다.
결론
지금까지 공급 충격이나 확장적 통화정책을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으로 지목하는 이유와 한계에 대해 살펴 보았습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에 대해 이론적으로 합의되는 바는 아직 없지만, 우리가 확인할 수 있었던 시사점은 공급 충격이 있다는 사실 만으로, 또는 확장적 통화 정책을 쓴다는 이유 만으로는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나지는 않는다는 사실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은 고통입니다. 스태그플레이션 시기에는 실업률과 인플레이션율을 더한 경제 고통 지수(misery index)가 10을 넘깁니다.
스태그플레이션의 원인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의가 진행 중이지만, 급격한 비용 상승과 잘못된 통화정책이 복합적으로 작용하여 스태그플레이션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