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지를 사용하면 토지 소유자에게 지대를 내야 합니다. 그런데 지대는 어떤 근거로 결정될까요? 이에 대한 해답이 차액지대입니다. 데이비드 리카도가 처음으로 주장했습니다.
지대가 어떤 근거로 결정되는가에 대한 이론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차액지대를 제외하면 위치지대 또는 입찰지대, 절대지대, 독점지대 정도가 있을 뿐입니다. 오늘은 차액지대에 관해 알아 보겠습니다.
차액지대
차액지대에서 차액(差額)은 차이를 의미합니다. 어떤 무엇인가와 다른 무엇의 차이가 지대라는 말이죠. 그 차이는 바로 비옥도가 가장 열등한 토지에서 생산된 생산물 가치와 비옥도가 가장 열등한 토지보다는 나은 토지에서 생산된 생산물 가치의 차이입니다.
이 차이(차액)를 토지 소유자(이하 지주)가 토지 사용자에게 지대(따라서 차액지대: diffential rent)로 요구하는데요, 거래라는 건 요구한다고 해서 다 되는 건 아니죠. 토지 사용자도 지주의 요구를 받아들이기 때문에 지대를 주고 받는 거래가 이루어질텐데요, 토지 사용자는 왜 받아들일 수밖에 없을까요?
차액지대가 생기는 과정
어떤 지역에 비옥도가 다른 3종류의 토지가 있고 토지 사용자(이하 생산자)는 1년간 동일한 생산비를 들여 아래와 같이 쌀을 생산할 수 있고 원하면 추가 비용 없이 구역 내 다른 토지 또는 다른 구역의 토지로 이동하여 쌀을 생산할 수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 비옥도가 가장 좋은 A 구역 토지: 쌀 100 가마
- 그 다음으로 좋은 B 구역 토지: 쌀 80 가마
- 그리고 가장 열등한 C 구역 토지: 쌀 50 가마
이 지역에 처음 진입하는 생산자 김씨가 원하는 토지는 당연히 A 구역에 있는 토지일 것입니다. 가장 비옥한 토지이니까요. 그런데 김씨가 사용하는 토지의 지주는 지대를 요구할 수 있을까요?
아직은 아닙니다. 지대를 요구한다면 김씨는 A 구역 중 아직 사용되지 않는 다른 토지로 옮겨 생산하면 되기 때문입니다.
더 많은 생산자들이 진입하여 A 구역 토지가 모두 임대된다면, 그 다음으로 진입하는 생산자는 B 구역 토지를 임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A 구역 토지 지주들이 지대를 받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되다
그런데 B 구역 토지를 임대할 수밖에 없는 생산자는 A 구역 지주들과 협상을 하려고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B 구역에서는 1년에 쌀 80 가마밖에 생산할 수 없지만, A 구역 토지를 쓸 수 있다면 쌀 100 가마를 생산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으니 B 구역 토지를 임대할 처지에 있는 생산자는 A 구역 지주에게 뭔가 반대 급부를 제공해야 할 것입니다. 바로 초과 이윤 쌀 20 가마(100가마 - 80가마)에 해당하는 가치입니다. 물론, 처음에는 쌀 20 가마에 해당하는 가치 전체를 다 주겠다고 하지는 않겠지요. 쌀 20 가마에 해당하는 가치 중 일부를 지대로 줄테니 A 구역 토지를 임대해 달라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 지역에 진입하는 생산자가 더 늘어나서 B 구역 토지도 모두 임대되는 상황이라면 A 구역 토지 지대는 쌀 20 가마에 해당하는 가치까지 오를 것이고 A 구역 지주들은 이 금액을 지대로 요구할 것입니다.
이 시점에서 이 지역으로 생산자가 더 들어 온다면 나중에 진입하는 생산자는 C 구역을 임대할 수 밖에 없습니다. 1년 동안 쌀 50 가마밖에 생산할 수 없는 마지막 C 구역까지 다 사용되게 되는 것이죠.
물론, C 구역 토지를 임대해야 할 처지에 있는 생산자는 A 구역 지주 혹은 B 구역 지주와 협상을 하겠지요. 이때 A 구역 지주에게 줄 수 있는 지대의 최고치는 쌀 50 가마(100가마 – 50가마)에 해당하는 가치이고, B 구역 지주에게 줄 수 있는 지대의 최고치는 쌀 30 가마(80가마 – 50가마)에 해당하는 가치입니다.
지금까지 설명한 과정을 거쳐 차액지대가 완성됩니다. 지금까지 이야기한 ‘쌀 00 가마에 해당하는 가치’를 ‘생산물 가치’로 바꾸면 차액지대는 ‘어떤 토지에서 생산한 생산물 가치와 비옥도가 가장 열등한 토지에서 생산한 생산물 가치의 차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장 열등한 토지’를 ‘최열등지’ 또는 ‘한계지(marginal land)’라고 하는데요, 한계지라는 개념을 적용하면 다음과 같이 간단하게 표현할 수 있습니다.
차액지대 = 한계지가 아닌 토지의 생산물 가치 – 한계지 생산물 가치
차액지대론은 농업 용지에만 적용?
앞에서 쌀 생산을 예로 들어 차액지대 형성 과정을 살펴 보았습니다. 그렇다면, 차액지대는 농업 용지(농지)에만 적용되는 지대 이론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비옥도’라는 개념을 ‘생산성’으로 대체하면 차액지대는 농지뿐 아니라 생산과 관련된 토지에도 적용할 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주택용 토지에도 차액지대론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생산물 가치’를 ‘한계 편익’으로 대체하면 주택용 토지의 차액지대는 한계지가 아닌 주택용 토지의 한계 편익에서 한계지 주택용 토지의 한계 편익 뺀 금액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차액지대론은 희소성 원칙과 수확체감의 법칙을 전제
희소성 원칙이 필요한 이유
전체 토지도 한정되어 있고 A 구역, B 구역 토지도 한정되어 있으니 나중에 진입하는 생산자는 한계지인 C 구역 토지를 사용할 수 밖에 없습니다. 한계지 사용이 있어야 차액지대론이 성립하는데, 한계지까지 사용하게 되는 것은 (비옥한 또는 생산성 높은) 토지의 희소성 때문입니다.
수확체감의 법칙이 필요한 이유
차액지대론은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요를 채우기 위해서는 한계지에서도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을 전제합니다. 한계지에서 생산한 생산물 가치가 있어야 차액지대가 성립하는 거죠.
수확체감의 법칙은 생산 요소를 더 투입할 때 추가되는 마지막 생산 요소 단위가 생산하는 생산량(마지막 단위 또는 최종 단위를 경제학에서 ‘한계‘라고 합니다.)이 이전 보다 조금씩 줄어든다는 법칙입니다.
만약, 수확체감의 법칙이 아니라 수확체증의 법칙이 적용된다면 A 구역 토지만 사용해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요를 채울만큼 충분하게 생산할 수 있을 것입니다.
수확체감의 법칙이 적용되는 사회여야 A 구역 토지만으로는 부족해서 B 구역 토지를 사용하게 되고 또 A와 B 구역 토지를 사용해도 사회가 필요로 하는 수요를 채우지 못해 C 구역 토지(즉, 한계지)도 사용되게 됩니다.
차액지대의 의미
차액지대가 형성되는 과정에 설명이 되어 있지만 명확하게 드러나지는 않은 내용과 빠진 내용을 정리함으로써 이 글을 마치겠습니다.
- 한계지에서는 차액지대가 생기지 않습니다. 다르게 표현하면 한계지의 차액지대는 0(zero)입니다. (물론, 한계지라고 해서 토지를 공짜로 임대할 수 있는 것은 아니겠지요. 한계지 임대에 부과되는 지대를 마르크스는 절대지대라고 했습니다.)
- 차액지대는 차등적입니다. 우리의 예를 다시 들면 A 구역 토지는 쌀 50가마에 해당하는 가치, B 구역 토지는 쌀 30가마에 해당하는 가치로 차등적입니다.
- 차액지대론에서 사회 전체에 통용되는 시장 가격은 한계지에서 생산한 생산물 가격입니다. 그리고 이 생산물 가격은 정상 이윤을 포함한 가격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아무도 한계지에서 생산하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 차액지대는 생산물 가격에 영향을 주지 않습니다. 생산자가 차액지대를 낸다고 해서 이를 생산물 가격에 전가할 이유는 없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최소한 한계지 수준에서의 (정상) 이윤은 확보 되니까요.
- 그러나 절대지대는 생산물 가격에 영향을 줍니다. 왜냐하면 한계지 임대자에게 절대지대가 부과된다면 가격을 올리지 않는 이상 정상 이윤을 확보할 수 없으니까요.
- 차액지대는 생산자에게 돌아갈 초과 이윤(우리의 예에서는 A 구역 토지 임대자와 B 구역 토지 임대자에게 돌아갈 C 구역 임대자의 이윤을 초과하는 이윤)이 지주에게 옮겨간 것입니다. 지주에게는 불로소득인 셈입니다.
차액지대의 II 형태
지금까지 설명한 차액지대는 차액지대의 I 형태라고 합니다. I 형태라고 하는 건 차액지대의 II 형태가 있기 때문인데요, II 형태는 예컨대 B 구역 토지를 임대하여 생산하는 생산자 최씨가 추가적으로 비용을 들여서 토지의 생산성을 더 높일 때 발생하는 초과 이윤을 말합니다.
물론 최씨가 토지의 생산성을 높여서 더 벌게 되는 초과 이윤은 처음에는 차액지대로 내지 않고 최씨가 가져갈 것입니다. 그러나 다음 계약 때 (최씨가 다시 계약을 하던 다른 이가 계약을 하던 상관 없이) 지주는 기존의 차액지대(I 형태)에 더해 최씨의 노력(생산비 추가)으로 생산성이 늘어난 부분까지 더해서 지대를 요구할 것입니다.
즉, 이 경우 최씨가 임대 했던 토지의 지대는 ‘차액지대 I형태 + 차액지대 II형태’가 될 것입니다.
리카도의 차액지대설?
지금까지 설명한 차액지대론은 리카도(D.Ricardo)의 차액지대설과 정확하게 일치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는 정상 이윤이나 초과 이윤이라는 개념을 쓰지 않았습니다.
리카도의 차액지대론을 설명하는 다른 글은 한계지의 생산물 가격이 생산비와 같은 것으로 보는 경우도 있고, 이를 기초로 시험 문제가 출제된 것도 본 적이 있습니다.
따라서 시험 문제를 풀어야 하는 분은 ‘한계지의 생산물 가격은 생산비와 같다’ 라든지 초과 이윤이 차액지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생산물 가격의 차이’가 차액지대로 된다는 식의 설명도 맞는 설명일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시기 바랍니다.
그러나 자본주의 사회에서 생산물 가격이 겨우 생산비를 커버하는 수준이라면 생산에 뛰어들 사람은 없다고 보는 것이 상식입니다.
제가 설명한 것처럼 한계지에서도 어느 정도의 이윤이 확보되어야 한계지에서 생산하는 사람이 있게 되고, 그래야 차액지대가 성립할 수 있으며, 차액지대가 가격 상승으로 연결되지 않는 이유가 매끄럽게 설명됩니다.
감사합니당!